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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을 듣고도 "아니에요"라고 부정하는 심리

"오늘 발표 정말 좋았어요." 동료의 칭찬에 "아니에요, 별로였어요"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사실 발표 준비에 며칠을 쏟았고,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우리는 칭찬 앞에서 즉각적으로 부정하게 될까?

자주 반복되는 상황이다. "예쁘네요", "잘하시네요", "대단해요"라는 말에 거의 반사적으로 "아니에요", "별로예요", "운이 좋았어요"라고 대답한다.

문화적 겸손과 체면 문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칭찬을 부정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 심리를 넘어 문화적 규범이다. 심리학자 하이디 마쿠스(Hazel Markus)와 시노부 키타야마(Shinobu Kitayama)는 동양과 서양의 자기개념(self-concept) 차이를 연구했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상호의존적 자기(interdependent self)가 강조된다. 자신을 집단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하며, 조화와 겸손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저는 대단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집단의 조화를 깨는 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같은 유교 문화권에서는 겸손(modesty)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칭찬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교만하다", "건방지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작동한다. "아니에요"라는 반응은 사회적으로 학습된 자기방어 전략인 셈이다.

낮은 자기가치감의 신호

문화적 요인을 넘어, 칭찬 부정은 낮은 자존감의 표현일 수 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자존감(self-esteem)을 "자신에 대한 전반적 평가와 가치 판단"으로 정의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타인의 긍정적 평가를 자신의 내적 자기상(self-image)과 일치시키기 어려워한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강하면, 칭찬은 현실과 맞지 않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니에요, 제가 뭐..."라며 칭찬을 거부한다.

이는 자기일치 이론(self-consistency theory)으로도 설명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기존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를 선호한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에게 긍정적 칭찬은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일으키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칭찬을 부정하게 된다.

가면 증후군과 과소평가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Pauline Clance)와 수잔 아임스(Suzanne Imes)가 명명한 가면 증후군(impostor syndrome)은 칭찬 부정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가면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성취를 인정하지 못하고 운이나 타이밍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 성공은 당신 덕분이에요"라는 칭찬을 들으면, "아니에요, 팀원들이 잘해줘서요", "타이밍이 좋았을 뿐이에요"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과소평가하고, 성공을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가면 증후군은 고학력자나 성공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흔하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명백한 성취를 이뤘는데도, 본인은 '사기꾼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칭찬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기 때문에 칭찬을 부정하는 것이다.

완벽주의와 자기비판

완벽주의자들은 칭찬을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리학자 토마스 그린스펀(Thomas Greenspon)은 완벽주의를 "실수나 결함을 용납하지 못하고 완벽함만을 추구하는 성향"으로 정의했다.

완벽주의자는 내부적으로 매우 높은 기준을 설정한다. 타인이 보기에는 훌륭한 결과물이어도, 본인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라고 생각한다. 칭찬을 들으면 "제대로 안 봤구나", "완성도가 낮은 걸 못 봤나봐"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런 사람들에게 칭찬은 불편한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엄격한 내적 기준과 타인의 칭찬 사이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대와 압박 회피

칭찬을 받아들이면 다음에도 그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긴다. 심리학의 기대 이론(expectancy theory)에 따르면, 칭찬은 미래 성과에 대한 기대치를 설정한다.

"당신은 이 일을 정말 잘해요"라는 칭찬을 받으면, 다음번에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아니에요"라고 부정하는 것은 그 기대치를 미리 낮추려는 방어 전략이다. '나는 원래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선을 그어두면, 다음에 실패해도 덜 실망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성 의심과 불신

과거에 진심이 아닌 칭찬을 많이 경험했거나, 칭찬이 조종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칭찬 자체를 불신한다.

"이렇게 칭찬하는 건 나한테 뭔가 부탁하려는 거 아닐까?", "립서비스 아닐까?"라는 의심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방어적 귀인(defensive attribution)이라고 부른다. 칭찬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먼저 거부함으로써 실망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겸손과 자기비하의 경계

문화적 겸손과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칭찬 부정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건강한 겸손은 "감사합니다. 다음에 더 잘하겠습니다"처럼 칭찬을 받아들이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태도다. 반면 자기비하는 "아니에요, 저는 형편없어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처럼 자신의 노력과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네프(Kristin Neff)는 자기자비(self-compassion)를 통해 이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제안한다. 자신의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완벽하지 않은 것을 수용하는 태도다.

일상 속 관찰 포인트

자신이 칭찬을 부정하는 패턴을 관찰해보자. 모든 칭찬에 "아니에요"라고 하는가, 특정 주제나 특정 사람 앞에서만 그러는가? 이 패턴을 이해하면 자신의 심리를 더 깊이 알 수 있다.

칭찬을 받았을 때 즉각 부정하지 않고 잠시 멈춰보는 연습도 도움이 된다.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말하고 숨을 한 번 쉬는 것만으로도, 자동적 부정 반응을 끊을 수 있다.

또한 칭찬을 부정할 때 사용하는 표현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별로예요", "운이 좋았어요", "다른 사람 덕분이에요"처럼 자신의 노력을 완전히 지우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이는 건강한 겸손이 아닌 자기가치 부정일 수 있다.

칭찬을 받아들이는 것은 교만이 아니다.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인정하는 것은 건강한 자존감의 표현이다. "아니에요"라는 말이 습관처럼 나올 때,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보자. 이것이 문화적 예의인가, 아니면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가.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 글은 일반적인 심리 정보를 바탕으로 한 참고용 콘텐츠이며, 개인의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